반가사유상의 신비로운 발견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는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있는 두 걸작이 있습니다. 그 두 걸작의 숨겨진 출생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반가사유상이란?
반가사유상은 오른 다리를 왼 무픞 위에 얹고, 오른손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댄 채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보살상입니다.
이 자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던 석가모니 태자의 모습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크게 유향했는데, 국보로 지정된 78호와 83호는 그중에서도 동양 불교조각의 가장 수준이 높고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보 중의 국보, 반가사유상의 '출생의 비밀'
하지만 위대한 이 두 불상에게는 안타까운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출토지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두 불상이 1912년 일제강점기에 각각 입수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입 당시의 서류나 기록은 남아있지만 '어느 절터의 어느 건물에서 나왔다'와 같은 결정적인 출토지에 대한 정보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보 제 78호 : 조선총독부가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후치가미 사다스케에게 4,000원을 보상해주며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하였습니다.
⇨국보 제 83호 : 1912년 이왕가 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 가지야마 요시히데에게 2,600원이라는 큰 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45년 국립박물관이 인수하였고, 이왕가박물관(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습니다.
제작 시기 추정
반가사유상을 보존하고 있던 사찰과 만든 곳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보관 상태, 장신구, 옷 주름 등의 모양으로 살펴볼 때 국보 제83호는 제작 시기가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됩니다. 신라 불상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국보 제78호는 제자 시기가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제작지에 대해서는 신라 또는 고구려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